제3기 한총련 사업을 중심으로 본 95년, 학생운동의 좌표

사회(fmin 12) ‘480/485’

제 목: [학생] 한총련으로본 95학생운동

올린시간: 95.11.04 11:33:40 조회: 21

고대신문 95/10/30자입니다.

제3기 ‘한총련’사업을 중심으로 본 95년, 학생운동의 좌표

60년대부터 시작된 박정희 군사정권의 강압정치, 80년 5.18광주학살 등 수많은 역사적 사건속에서 대학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계속된 긴급조치로 인하여 학생운동은 큰 타격을 입었고 흔히 과도기라고 불리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는 시위가 감소하고 학내 면학 분위기가 차차 조성됐다. 90년대 이후, 학생운동이 극심한 침체기를 맞으면서 80년대까지 대학문화의 중심을 이루던 ‘전투적’분위기가 사라지고 학생운동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그리고 95년. 작년의 ‘주사파파동’과 ‘조문논쟁’으로 위기를 맞았던 학생운동진영은 학생운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아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적으로 전개했다.

제3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장 = 정태흥.본교 총학생회장, 이하 ‘한총련’)의 경우 “보다 애국적으로, 보다 대중적으로”라는 기조아래 출범하여 각종사업을 전개해왔다. 이는 제2기 ‘한총련’이 다양한 성향의 학생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층 학생들에 기반을 둔 대중적인 사업을 전개하는데 있어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판단과 냉전의 해체와 북미관계의 개선 등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라 올해를 ‘통일원년’으로 설정한 점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총련’측은 올한해 학생운동의 특징으로,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던 학생회 운영의 절차적 민주성을 보완한 것과 통일운동 관련사업들을 지속적인 사업으로 전개한 점을 꼽고 있다.

과거 학생회의 운영방식이 간부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한 ‘상명하달’식 방법이었다면 올해에는 5.18불기소 처분과 관련한 동맹휴업 결의와 같이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과학생회에서, 단과대 학생회로, 다시 각 대학 총학생회에서 ‘한총련’ 중앙본부로 의견을 전달하여 운동의 방향을 설정해왔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지난 5월 경북대에서 열린 제3기 ‘한총련’출범식의 경우 과거의 권위적이고 획일화된 모습에서 탈피하여 부문계열별로 학술활동, 동아리활동을 벌이고 기존의 전면의 무대를 중앙무대로 바꾸는 등 학생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몇가지 변화가 시도됐다. 또 헌혈, 모금활동, 시가행진 등 가스폭발사고로 비통에 잠겨있는 대구시민들과 함께하는 각종 행사를 실시하여 시민과의 연대를 모색한 점도 또하나의 특징이다.

그러나 학생운동의 대중성 확보를 위한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생회 간부들의 의식미비와 실천적인 계획의 부족으로 그 성과를 충분히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학생회 간부들의 관성탈피가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올해 ‘한총련’의 가장 특징적인 사항중 한가지는 경선을 통해 의장을 선출한 것이다. 이에대해 ‘한총련’측은 경선을 통한 의장선출이 ‘한총련’의 변화와 혁신의 첫단추가 되었다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한편, 통일운동 관련 사업의 경우 일관된 맥락아래 각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했으나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으로 지적됐다. 사업전개에 있어서는 출범식에서 결의됐던 통일에 대한 의지를 ‘6.3 조국통일과 일본 군국주의 부활반대를 위한 남북해외 청년학생대회(이하 ‘6.3대회’)’를 통해 좀더 굳건히 다졌으며 그를 바탕으로 ‘8.15 50주년 민족공동행사’를 준비하고 북한에 정민주, 이혜정양을 ‘한총련’대표를 파견하는 등 이제까지 시기에 따라 ‘한때 행사’로 전개되던 획일적이고 일시적인 통일운동에서 탈피, 상호간의 연관아래 다각적인 사업들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총련’측은 ‘6.3대회’에 북한 학생들의 참여가 성사되지 못했으며 특히 ‘8.15 50주년 민족공동행사’에 있어 ‘범민족대회’와의 분리 실시로 인하여 민족해방진영의 분열의 모습을 보여 준것은 올해 사업중 가장 아쉬운 점으로 자체평가하고 있다.

한편 각 대학별로 전개되는 학원자주화투쟁의 경우 ‘한총련’이 각 대학의 결과를 총화하여 지원하는 역할을 충분히 담당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 ‘한총련’의 영역확대를 위해서는 각 대학의 학원자주화투쟁 지원에 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올 95년도 ‘한총련’활동에 대해 ‘한총련’ 민자성 대변언론담당은 “‘한총련’이 국민들과 학우들로 부터 많은 기대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그동안 추상적으로 고민되어온 ‘한총련’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학생회 간부들 사이에서 구체적인 자각과 이해가 형성된 것 같다고 긍정적인 면을 평가했다. 올해에는 대구에서의 출범식이나 5.18관련 투쟁 등 시민, 학생들의 동의속에 함께하는 행사가 많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에 덧붙여 민자성 대변언론담당은 “실천중심이 아닌 논의 중심의 사업전개로 한발 전진의 기회에 반보밖에 나가지 못한 점”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한편 지난 93년의 총학생회 회장단 모임을 기반으로 94년도에 결성되어 95년, 전국적인 좌파세력연합으로 등장한 ‘진보를 향한 연대’의 경우 지난 6월의 한국통신 노조분규와 지자체 선거에서 나타난 의견차로 인해 해체된 상태이어서 선거를 앞두고 좌파세력연대의 필요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대장정 학생연합’측은 올해 ‘한총련’의 활동에 대해 5.18투쟁과 통일운동을 나름대로는 열심히 전개했지만 5.18투쟁의 경우 선도적인 역할을 담보하지 못했고 ‘민중연대’와 ‘노학연대’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고 평가한후 학생회가 대중적이고 실질적인 권력조직으로 바로서기 위해서는 경직된 분위기를 탈피하여 새로운 전환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학생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에 있어서도 5.18이라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면 여느해와 큰 차별성이 없었다고 규정한후 계획성 있는 사업과 일반 학우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정세에 이끌리는 운동이 아닌 정세를 선도할 수 있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연세대 총학생회의 경우 올 95년 학생운동의 특징으로 민족해방진영의 분화가 두드러진 것과 한국통신 노동조합 사태를 계기로 PD진영의 전투성이 복권된 점을 지적했다. 특히 ‘8.15 50주년 민족공동행사’에서 나타난 분열양상에 대해 연세대 노종극 부총학생회장은 “이는 북한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방식의 차이에 의한 것으로 운동의 진전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언급한후“더이상 ‘한총련’으로의 획일적인 단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주장했다.

또한 제3기 ‘한총련’사업에 대해서는 좌파운동이 학생운동의 전면적인 세력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한총련’의장 경선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학생운동의 원칙성마저 폐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총련’의 대중적 노선을 부정적인 측면으로 지적했다.

올 95년의 경우 90년대 초반이후 위기에 처해 있었던 ‘학생운동’진영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의 소리가 높다. 즉 5.18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파문 등 5.6공 관련세력에 대한 정부의 비합리적 처사와 5.6공 비리사건들이 계속되면서 학생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과 기대치가 높아졌고 근래에 과소평가됐던 학생운동의 ‘정당성’을 확인, 인정받을 수 있다는 중론이다. 이러한 학생운동의 새로운 전기는 문민정부 개혁의 실패와 맞물려 향후 학생운동 전개에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95학년도 학생운동을 전면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다소 이른감이 있다.

‘한총련’의 경우 5.18관련 투쟁의 성과에 따라 제3기 ‘한총련’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가 좌우된다고 판단, 신문광고게재, 선거시 각 후보자들의 5.18관련 공동공약 채택 등 특별법, 특별검사제의 채택과 5.18학살자 처벌을 위한 투쟁에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이와함께 민주노총에 대해 일방적 지원이 아닌 연대활동을 전개하여 ‘민주노총 지원단’건설, 노학연대한마당 등의 사업을 벌여나갈 방침이다.

10월, 선거를 막바지에 앞둔 상황이지만 올 95년 학생운동의 현재 좌표는 여전히 수직선 중앙에 놓여 있다. 앞으로 남은 기간들이 올 한해 운동의 성과를 모두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할때 좌표가 수직선끝에 도달할때 까지 학생운동 진영은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고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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